한국 대외관계사 - 흥선대원군의 국방강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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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1-2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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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영불연합국에 의해 북경이 함락되고 황제가 열하지방으로 피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조선의 위정자들은 서양정세는 물론 동아시아의 정세에 크게 어두웠다. 침략군은 16일 강화를 점령하고 서울에 이르는 주요보급로를 차단하여 조선 정부를 궁지에 몰아 항복을 받을 속셈으로 한강을 봉쇄했다. 같은 해 9월 15일 로즈는 전함 3척, 포함 4척, 병사 1,000여 명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략해왔다. 단지 경화거족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치 개편적인 무장들의 권한 강화에 그쳤고 실질적인 군비 증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러한 양상은 병인양요 직후에도 이어졌다.(병인양요) 대원군의 천주교 대탄압에서 살아남은 리델(Felix-Clair Ridel)의 보고와 보복요청을 받은 북경주재 프랑스 공사 벨로네(Claude M. Henri de Bellone)는 조선 국왕이 우리 불행한 동포에게 박해를 가한 그날은 조선 왕조의 최후의 날이다라고 단언하면서 프랑스 극동함대사령관 로즈(Pierre Gustav Roze)제독에게 조선 침략을 명령했다. 프랑스 군함은 서울의 양화진·서강까지 올라와 수로탐사를 한 뒤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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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집권초기에는 외세의 동태에 대비한 국방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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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집권초기에는 외세의 동태에 대비한 국방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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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은 군비증강을 위한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셔먼호의 본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조선의 내강인 대동강을 침범해서 교역을 강행하고 평양에 들어와 무력적 도발 행위를 자행하다가 전원 몰살되었다. 1860년 영불연합국에 의해 북경이 함락되고 황제가 열하지방으로 피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조선의 위정자들은 서양정세는 물론 동아시아의 정세에 크게 어두웠다. 이러한 양상은 병인양요 직후에도 이어졌다. 병인사옥을 빌미로 프랑스군이 침략할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되고, 미국의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을 침입하였다. 단지 경화거족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치 개편적인 무장들의 권한 강화에 그쳤고 실질적인 군비 증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해 8월 프랑스군이 침입하였다. 로즈는 강화해협을 중심으로 한 서울까지의 뱃길을 탐사할 목적으로 3척의 군함을 이끌고 1866년 8월 10~22일에 제1차 원정을 단행했다. 병인양요 직후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여 조야에서 건의한 위의 방안(方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의 침입을 오직 서교에 물든 자들의 존재 탓으로 돌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세동점의 위기상황에서 조선 정부의 인식은 전통적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